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1923년 9월 1일 관동지방(간토)에서 일어난 대지진이다. 당시 지진은 세번 일어났으며 5분 이상 계속 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일본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은 약 12시, 점심을 짓고 있던 상황이라 엄청난 화재가 도쿄를 뒤덮었다. 엄청난 지진이후에 일본인들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불신이 싹텄다. 일본정부는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경찰서에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냈다. "조선인들이 폭탄 테러와 강도를 계획하고있으니 주의를 당부한다." 이런 내용은 곧바로 신문에 실렸고 빠른속도로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적개심을 보였고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여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살해하였다. 이 자경단은 죽창과 몽둥이, 일본도, 총기로 무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만행으로 인해 중국인, 류큐인, 지방의 일본인까지 모조리 학살당했다. 이유는 복장과 발음상의 차이었다고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을 위해 묵인하였다. 후에 일본정부가 자경단에 개입하여 체포하였으나 기소당한자들도 무죄방면되었으며 이 사건에 책임을 진 사람과 조직은 전혀 없었다.
1923년 9월 1일 관동지방(간토)에서 일어난 대지진이다. 당시 지진은 세번 일어났으며 5분 이상 계속 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일본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은 약 12시, 점심을 짓고 있던 상황이라 엄청난 화재가 도쿄를 뒤덮었다. 엄청난 지진이후에 일본인들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불신이 싹텄다. 일본정부는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경찰서에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냈다. "조선인들이 폭탄 테러와 강도를 계획하고있으니 주의를 당부한다." 이런 내용은 곧바로 신문에 실렸고 빠른속도로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적개심을 보였고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여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살해하였다. 이 자경단은 죽창과 몽둥이, 일본도, 총기로 무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만행으로 인해 중국인, 류큐인, 지방의 일본인까지 모조리 학살당했다. 이유는 복장과 발음상의 차이었다고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을 위해 묵인하였다. 후에 일본정부가 자경단에 개입하여 체포하였으나 기소당한자들도 무죄방면되었으며 이 사건에 책임을 진 사람과 조직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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