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17의 게시물 표시

제너럴셔먼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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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셔먼호 사건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1866년 평양 군민들이 미국의 상선이었던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워 버린 사건이다. 이 상선은 평양에서 거래를 요구하며 행패를 부렸고 당시 박규수의 지휘로 침몰당했다. 애초에 조선에서는 강경한 경고와 함께 돌아가라는 메세지를 보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제너렬셔먼호에 올라타 중재를 맡던 이현익을 붙잡아 감금하는 등 평양에 있던 군민들을 매우 자극하였다. 이런 무모한 행동에 대해 군민들은 활과 소총으로 대응하였고 감금되었던 이현익을 구출해내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정권을 잡고있던 흥선대원군은 10월 26일 병인양요를 계기로 실시되었던 통상수교거부정책를 더욱 강화하였다. 또한 5년뒤 1871년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웃기게도 대동강에 침몰한 제너럴셔먼호를 인양하여 조선화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양만 비슷했을 뿐 기술은 몰랐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수은규제 후 미나마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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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규제 후 미나마타의 모습 1950년대 화학회사에서 흘려보낸 수은이 바다로 들어가 생선, 갑각류등이 오염되어 그걸 섭취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나마타 병'인데요. 이런 피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전세계적으로 '미나마타 조약'이 규제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제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시 "에코파크 미나마타"의 지하에는 엄청난 수은이 묻혀있는 상태인데요. 수은 농도가 높은 물질들을 강판과 흙으로 덮어 1990년에 매립이 완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판에 있습니다. 강판의 수명은 약 50년 정도로 2040년 후에는 미나마타에 묻혀있는 수은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에 그것을 관리하는 정책은 없습니다. 실제로 미나마타 병 연구 부장인 아카기(75)씨도 이런 매립지를 굉장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수은을 모아 매립하여 '미타나타 조약'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오염장소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대지진이나 쓰나미에 매립지역이 쓸릴경우 걷잡을 수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넬슨 만델라와 인권운동

넬슨 만델라와 인권운동 넬슨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다. 지도자이기 전에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지도했다.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은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넬슨 만델라를 이야기 할때 인권운동에 관해서 빠트릴 수 없다. 비트바테르스탄트 대학에서 법학부를 졸업한 넬슨 만델라는 재학 중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 많은 사상을 접했다. 이런 경험 덕에 넬슨 만델라는 사상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재학 중에 청년동맹을 설립하였고 그 당시에 집행위원이 되었다. 대학 재학 당시부터 반 아파르트 헤이트 운동을 벌인 것이다. 후에 본인의 법학지식으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이듬해 군사조직을 만들게 된다. 이때 벌인 일 때문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이다. 많이 알려진 것 처럼 콜럼버스는 원래 포르투갈에게 먼저 제안하였으나 거절당하여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 왕이었던 페르난도는 정치, 지리, 종교적 이룩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항해 지원을 약속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해군제독으로 임명되었고 발견하는 것의 10%를 콜럼버스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또한 스페인 왕은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을 모집하였다. 제 1회 항해때 현재의 바하마제도에 도착하였고 산살바도르라 칭하였다. 지금의 아이티에 도착하여 인도(India)라고 생각하였고 그 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칭하였다. 4개월 후에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유럽에 가져간 금제품들은 유럽에 엄청난 혁명을 일으켰다. 이때 생긴 말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