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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남북 공동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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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남북 공동 성명 6.25이후 남북 평화에 굉장히 중요한 공동 성명이 1972년 7월 4일 이루어졌다. 바로 7.4 남북 공동 성명인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이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 발표한 공동성명 이다. 대한민국 측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파견되어 김일성과 만나게 되었다. 1968년 프라하의봄,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환멸을 느끼게한 브레즈네프 독트린, 1969년 중소 국경 분쟁으로 인해 그 탄탄하던 공산권이 분열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런 세계적 배경과 맞물려 박정희가 이끌던 제3공화국은 정치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었다. 7.4남북 공동 성명때 유엔동시가입, 통일 조항등을 넣어 평화모드를 이끌었으나 당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신의 권력기반에 7.4 남북 공동 성명을 이용했다. 남북 공동 성명 3개월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발표해 독재를 시작하였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이런 평화의 분위기에서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여 완벽한 주체사상을 확립하였다.

1941년 키예프전투

1941년 키예프전투 키예프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이 일으킨 거대한 포위전의 이름으로, 상대는 소련군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군이 포위된 전투이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키예프 전투는 바르바로사 작전의 일부로 1941.8.23~9.26까지 진행된 포위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키예프 방어 작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키예프 전투에서 소련은 760,000여명, 박격포 3,923문, 전차 114대, 전투기 167대를 잃었다고 전해진다. 소련 야전군의 43개 사단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40군도 전투 불가능의 피해를 입었다고 전해지며 남서부 전선군은 군을 아예 재편성해야 했다고 한다. 1943년 2차 키에프 전투에서 소련은 키예프 지역을 재탈환하는데 성공한다. 1941년 8월 히틀러는 독일을 위해 키예프 전투를 일으키기로 입장을 굳혔으며 결국 2 기갑군과 2군의 거대한 병력을 남부집단군으로 보냈다. 1 기갑군과 함께 키예프에서 남동부 방향으로 포위시키는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공무원 준비생 시험 성적 조작 사건

공무원 준비생 시험 성적 조작 사건 2016년 3월 26일 7급 공무원 준비생인 26살 송모씨가 정부서울청사 16층 인사혁신처에 들어가 시험 담당자의 컴퓨터를 켜 자신의 이름을 합격자 명단에 추가한 사건이다. 공무원 준비생 시험 성적 조작 사건은 컴퓨터 해킹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직접 침입해 조작한 사건이기 때문이 충격이 더 컸다. 경찰 조사 이후에 단독범행이 드러났고 문 옆 잠금장치 옆에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2월 28일 최초로 청사에 들어갔고 그 후로 공무원 신분증을 훔쳐 5차례에 걸쳐 청사에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격자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으로 모자라 시험지와 답안지를 훔치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 준비생 시험 성적 조작 사건 이후 청사의 보안 방식과 선발 방식에 신뢰도는 추락했다. 일개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청사에 들어가 조작 할 수도 있는 허술한 방식이 공무원 선발 시험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건이후로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지역인재 추천선발제에 대해 전수조사도 착수하였다.

조선총독부 철거

조선총독부 철거 조선총독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총괄한 건물이다. 유사 기관의 관리와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엄청난 관리를 맡은 곳이다. 1906년 통감부의 설치로 일본인 관리가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의 주거를 관리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조선총독부 관사가 지어졌다. 조선총독부가 전격적으로 기능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10년 10월 1일이며 초대 총독으로 육군대장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취임하게되었다. 이후로 조선총독부는 8.15 광복까지 35년간 한반도에 대해 악랄한 식민통치와 수탈에 앞장섰던 기관이다. 현재 조선총독부는 철거되었으며 원래는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말도 안되는 큰 건물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조선총독부가 철거되었는데, 광복 후 철거 전까지 그 건물을 국가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였다. 조선총독부를 철거할 당시 tv 생중계로 철거장면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덕분에 지금은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 전경을 볼 수 있다.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여행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여행 바스쿠 다 가마는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자이다. 1500년대에 3차례에 걸쳐 인도로 향했고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해안을 거쳐 인도까지 항해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때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여행으로 기록된 항로가 후에 포르투갈의 식민지개척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바스쿠 다 가마는 천문학과 항해술에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전쟁에도 참여하였던 군인이었다. 바스쿠 다 가마의 첫 항해는 170여명의 선원과 함께하였으나 인도의 기후인 '몬순'때문에 130일정도를 허비했다. 이 기간동안 70일을 허비했고 선원의 반을 잃었다. 또한 도착하고 나서 포르투갈 선원들을 남기고 왔으나 대부분 학살당했다. 그래서 바스쿠 다 가마의 두 번째 항해에선 20척의 군함을 이끌고 인도로 가 보복을 했다고 전해진다.

공황장애증상

공황장애증상 공황장애는 심한 불안 발작과 함께 평소에 일어나지 않던 증상들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불안장애이다. 10년전까지만 해도 공황장애라는 질병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장애에 걸리는 유명인이 많아져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는 흔히 놀라거나 극심한 불안상태가 되었을때 공황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공황장애에서 발견되는 증상은 조금 다르다. 공황장애증상은 다음과 같다. '특별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위협을 느끼며 매우 불안해 하는 것'. 컴퓨터를 하며 워드작업을 하고있는 와중에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대표적인 공황장애증상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2. 졸도할 것 같은 느낌 3. 질식 할 것 같은 느낌 4. 마비되는 느낌 5. 죽을 것 같은 공포 6.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