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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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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1923년 9월 1일 관동지방(간토)에서 일어난 대지진이다. 당시 지진은 세번 일어났으며 5분 이상 계속 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일본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은 약 12시, 점심을 짓고 있던 상황이라 엄청난 화재가 도쿄를 뒤덮었다. 엄청난 지진이후에 일본인들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불신이 싹텄다. 일본정부는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경찰서에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냈다. "조선인들이 폭탄 테러와 강도를 계획하고있으니 주의를 당부한다." 이런 내용은 곧바로 신문에 실렸고 빠른속도로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적개심을 보였고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여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살해하였다. 이 자경단은 죽창과 몽둥이, 일본도, 총기로 무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만행으로 인해 중국인, 류큐인, 지방의 일본인까지 모조리 학살당했다. 이유는 복장과 발음상의 차이었다고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을 위해 묵인하였다. 후에 일본정부가 자경단에 개입하여 체포하였으나 기소당한자들도 무죄방면되었으며 이 사건에 책임을 진 사람과 조직은 전혀 없었다.

88올림픽의 개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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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의 개최 배경 1988년 9월 17일 부터 10월 2일까지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88올림픽이 개최되었다. 1979년 9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은 제 24회 올림픽의 서울 유치 계획을 승인하였다. 2년 뒤인 1981년에 대한민국의 서울이 52표로 27표를 받은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당시 세계정세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구도가 팽팽히 맞서던 상황이었다. 이미 앞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은 서방 진영과 공산 진영이 불참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1988년 서울 올림픽은 굉장히 민감한 외교 사항이었다. 대한민국은 서방진영의 한 축이었기 때문에 당시 공산국가들과 제대로된 외교 관계조차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공산국가들의 88올림픽 참가를 막기위해 로비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동독은 1985년 3월 참가를 선언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소련과 다른 노선을 걷던 상황이었고 스포츠계 인사들의 반발로 인해 소련에 통보하지 않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참가를 발표하였다. 소련도 어쩔 수 없이 참가 신청을 하였고 88올림픽은 반쪽 대회로 불렸던 앞선 두 올림픽을 극복하게 되었다.

메이플라워 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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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 호의 이야기 메이플라워호는 지금의 매사추세츠 주에 내렸던 '영국인 청교도'들을 수송한 선박이다. 이 선박의 항해로 인해 지금의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1620년 항해한 메이플라워호에 대한 이야기는 그 배경이 더 흥미롭다. 1520년대 말 영국의 왕인 헨리8세와 교황과의 큰 갈등이 있었다. 유럽 본토와 떨어져 있던 영국의 성직자들은 헨리8세를 교회에서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 성공회'가 만들어졌다. 결국 영국성공회는 국내화를 굉장히 강화하게 된다. 왕권과 종교권을 모두 거머진 왕이 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고, 결국 이 결정은 영국 청교도와 등을 지게 된다. 그랬기 때문에 영국 청교도가 지금의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메이플라워호와 함께한 항해는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항로를 이탈하여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에 1620년 11월 21일 케이프코드에 도착하고나서 그해 12월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때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재배를 배워 그 해 겨울을 났다고 전해진다. 이름은 굉장히 낭만적인 메이플라워호는 이러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